모도책장들여다보기
   
작성일 2021/08/23 22:32
추천: 0  조회: 101  
[book] 모든 것은 영원했다

 
 
 
 
 
 
 
 
정지돈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 2021
 
 
 
 
 

정웰링턴은 꿈을 꿨고

꿈을 기억하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기억이었고

두 세계에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인생이 두 갈래로 나뉘었고 언젠가 그 사실을 잊었지만

갑자기 떠올랐으며

떠오른 순간

인생 전체가 쏟아져 내리는 기분.


 

정웰링턴은 하나의 삶을 가지지 못했고

하나의 국가도 가지지 못했다.

정웰링턴을 아는 사람은

대부분 그를 오해하거나 경계했고

사랑해도 일부분만 받아들였다

그에게 필요한 것을 아무도

그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꿈속에서 정웰링턴은 두번째 삶을 살았다.

또는 세번째, 네번째.

인간은 매일 꿈을 꾸지만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정웰링턴은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

다시 잠들지 못했다.

1963년 1월의 어느 날이었고,

어쩌면 2월일지도 몰랐다.

정웰링턴은 프라하에서 172킬로미터 떨어진 도시

헤프에 살고 있었다.


 


 


 

소설의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정웰링턴은 도대체 누구인가, 라는 궁금증으로 소설을 따라간다.


 

책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미래를 전망함>이라는 제목의 작가 후기까지

보고나니 그 궁금증은 해소되는데,

첫 페이지에서 언급된 정웰링턴의 꿈은 바로 이 소설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 현앨리스의 아들로

미국 국적을 가졌으나

체코로 이주하여 공산주의자로 살면서 의학을 공부하고,

비밀경찰에 포섭되어 스파이가 되고,

체코의 한 시립병원에서 안정된 직장을 가지게되나

그 후 1년 만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


 

투철한 공산주의자였으나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북한으로의 입국을 거부당하고,

체코에서는 비밀경찰에 의해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던 인물.


 

작가는 정웰링턴과 그의 친구, 가족들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을 때,

자신이 원했던 것은 그들을 생각하는 것이었고

그들을 통해 생각하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시대의 마타 하리로 오해받으며 남한의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미움 받았다는

그의 어머니를 포함하여 현씨 가족들에게는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고통과 기쁨을 함께했으며

투쟁으로서의 삶이 존재했으나,

정웰링턴은 혼자였고 독립을 추구해야 할 고국이 없었다,고 판단한다.


 

작가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매혹당했다,고 고백하며

관점에 따라 그것을 무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능력이야말로 가장 과대평가된 덕목이다.

능력은 사람의 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안과 밖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며

결국에는 그의 밖에 자리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유능함이 자신을 증명하는 종류의 능력이라면

불능은 세계를 증명하는 능력이다.


 

정웰링턴의 불능은

그가 가진 가장 적나라한 능력이었다.


 

거의 남아 있지 않는 기록과 목소리,

망각으로서

그렇다.


 


 


 

작가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기 위해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체코의 도시 헤프를 방문하기로 한다.


 

정웰링턴이 살았던 도시,

그리고 죽은 도시를 만나기 위하여.


샹탈 에커만의 1993년 다큐멘터리 [동쪽]을 언급하며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사회주의 국가의 풍경, 얼굴과 거리 들,

기차역과 들판, 공장, 바람과 비, 눈과 봄기운을
담고자 했다,는 애커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사의 시간은

순차적이거나 진보적인,

인과적이거나 선형적인 시간을 뚯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다림의 시간이며

오지 않지만 남아 있고

사라질 것을 예감하는 시간이다.


 


 


 

젊은 예술가의 도시 베를린이 아닌,

자아를 찾아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닌,

홀로코스트의 흔적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닌,

이십대의 자신은 언제나 동유럽에 가고 싶었다,며

동유럽의 나라 체코로 가게된

어렴풋한 이끌림을 전한다.


 

그러나,

지금의 체코는 미디어에서 보던 20세기 사회주의국가의 이미지를

프랜차이즈 간판으로 뒤덮은 나라로 느낀다.


 

브루탈리즘 스타일의 건물이 가득한

회색빛 도시 아니야? 라는 말에

천만에. 그런 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라며 핀잔을 듣는

역사의 일부, 그것도 모두가 망각하길 원하는 일부만

우연히 섭취한 멜랑콜리하고 나이브한 작가에 불과했다,며 체코 방문 기록을

씁쓸하게 들려준다.


 

헤프 중앙 광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에어비앤비에 묵으며 헤프 거리를 거니는 작가는

헤프의 시가지는 작고 낡았으며 해가 지기 시작하자

만성적인 침울함과 무관심이 느껴졌다고 말한다.

정웰링턴이 근무했던 헤프 시립병원과

그가 살았던 아파트를 방문하기로 하지만,

소설에서 그 장소들을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한다.


 

헤프로 가는 기차에서 읽은

빅토르 세르주의 [한 혁명가의 회고록]은

작가에게 이 소설을 쓰게 한 중요한 참고문헌일지 모른다.


 

거의 모든 페이지의 귀퉁이를 접었고 줄을 그었다,고 말하며

단지 모든 페이지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한 번도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며

십대에 이미 아나키스트가 됐고

열다섯살에 집을 나와

광부, 벌목꾼, 인쇄공, 제도사로 일했던 인물.


 

[한 혁명가의 회고록](빅토르 세르주 지음, 정병선 옮김, 오월의 봄, 2014)의 추천사를 쓴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대)는

빅토르 세르주의 회고록이 인플레를 당한 '혁명'의 본래 뜻을

훌륭하게 잘 밝혀준다,고 강력하게 언급한다.


 

이 책의 10장 미래를 전망함을 정지돈이 작가 후기의 제목으로 인용한 데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모든 것은 영원했다]를 읽으며

왜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불안의 책]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소설과 비소설이 이렇게 한 작품으로 인해

혼란스럽게 엮일 수 있는 것일까.


 

정지돈이 정웰링턴을 찾아 동유럽의 도시 헤프를 방문한 것은 마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그레고리우스 교수가

의사이자 공산주의자였던 아마데우 드 프라두를 찾아

리스본으로 향한 것과 연결된다.


 

리스본의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은

[모든 것은 영원했다]와 이어진다.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

(불안의 책, P.14)


 


 

삶에 동의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이론과 반대로 행동하기 위해서 이론을 세우고

거기에 대해 심사숙고하자.

(불안의 책, P.35)


 


 

책일 읽지 않기 위해 책을 사자.

음악을 듣거나

거기에 누가 오는지 보려는 생각 없이

음악회에 가자.

걷느라 지쳐 있을 때

긴 시간 산책하고,

시골이 따분하므로

시골에서 며칠을 지내자.

(불안의 책, P.35-36)


 


 

문학이란 예술과 사상의 결합이며

현실의 흠을 덜어낸 결과로,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루어야 하는 목표다.


그것이 동물적인 본성의 여분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적인 것에서

비롯된 노력인 한에서

그러하다.

...

움직이는 것은 살아 있고,

말해지는 것은 살아남는다.

(불안의 책, P.39)


 


 


 


 





독서로 자유를 얻는다.

독서로 객관성을 획득한다.

나는 내가 되기를 멈추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존재가 되기를 그만둔다.

내가 읽는 것은 때로 나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의복 같은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명료함이고,

만물을 비추는 태양이고,

고요한 대지에 그림자를 드리운 달이고,

바다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이고,

녹색 이파리를 흔드는 나무의 견고함이고,

농장 연못에 깃든 평화이고,

포도나무 덩굴이 우거진

해안의 비탈길이다.

(불안의 책, P.78)


   


 


 

여행은 무엇이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든 석양은 그저

석양일 뿐인데 그것을 보러

콘스탄티노플까지

갈 필요는 없다.

여행을 하면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나는 리스본을 떠나 벤피카에만 가도 자유를 느낀다.

...

내 안에 자유가 없다면

세상 어디에 가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


콩디야크는 그의 유명한 책 [의상철학]에서

"우리는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도,

아무리 낮은 곳에 떨어져도,

결코 우리의 감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민감한 상상력을 동원해

우리 자신을 타자화하지 않는 한

타인의 존재에 닿을 수 없다.

진정한 풍경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불안의 책, P.180)


 


 

명성이 바로 미래다.

자부심이 주는 행복은

어떤 물질적인 소유로도

얻을 수 없는 행복이다.


 

...


 

나는,

이 덧없는 삶에서 아무것도 아닌 나는,

실제로 글을 쓰고 있기에

먼 훗날 내 글이 읽히리라

상상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적어도 내게는 명성을 가져다줄 것이

있기에.

(불안의 책, P.191)


   


 


 

잠과 삶의 관계는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과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의 관계와 같다.

우리는 자는 중이고

현재의 삶은 꿈이라고 말할 때

이는 비유나 시적인 표현이 아니고

실제로

그러하다.

(불안의 책, P.232)


 


 


 






어쩌면 소설은

신이 우리를 통해 창조한 또하나의

완벽한 현실이자 삶이고,

우리는 오로지 소설 창작을 위해 존재하는게 아닐까?

문명은 오로지 예술과 문학을 만들어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언어는 예술과 문학을 말하고 남긴다.

문학 속 인물들이야말로

정말로 사실적인 존재가 아닐까?

(불안의 책, P.252)


 


 


 

유일하게 진실한 예술은

건축뿐이다.

하지만

현대적인 환경으로 인해

건축의 특징은 인간의 영혼에 드러나지 못한다.

그래서 과학이 발달했다.

오늘날에는 기계만이 건축을 포함하고,

수학적인 증명만이

논리적 연쇄가 있는 논증이다.

창조력은 기댈 수 있는 버팀목,

즉 현실이라는

목발이 필요하다.

(불안의 책, P.317)
 


 


 

인생은

감탄사와 의문사 사이의

머뭇거림이다.

의심에는

마침표가 있기 마련이다.

(불안의 책, P.463)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아는 사물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 일어난다.

그 일들은 날마다 거론되고, 잊히고,

그것들을 데려온

불가사의가 그것들을 다시 데려가고,

비밀은 망각 속에 묻힌다.

그것은 바로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은 앚혀야 한다는 법칙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태양빛 아래 한결같고,

다른 세상은

그림자 속에서

우리를 관찰한다.

(불안의 책, P.522)


 


 


 


 




무관심의 미학


 

몽상가라면 어떤 대상이든

그 사물이 자신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완전한 무관심으로 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결코

진정으로 느끼지 말 것.

자신의 야망과 고뇌와 욕망을

무심히 바라보는 수준까지 끌어올려

창백한 승리를 거둘 것.

마치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자신의 기쁨과 고뇌를 지나칠 것.


 

자신을 가장 확실하게 지배하는 길은

자신을 향해 무관심해지는 것으로,

자기 육체와 영혼을 마치 '운명'이 원해서 우리가 살게 됐을 뿐인

집이나 땅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불안의 책, P.526)
 


 

지난 며칠간은 불확실한 단념 속에서 보낸

몇 세기 같았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풍경 속에 버려진 호수처럼

침체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여러 가지로 달라지는 단조로움이,

결코 똑같은 시간이 반복되는 일 없는

시간의 연속이,

즉 삶이 잘 흘러갔다.

모든 것이 잘 지나갔다.

...

변하는 모든 것들 중에서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게

내 것이다.

내가 이룬 모든 일 중에서

결국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게

내 것이다.

(불안의 책, P.562)


 


 


 

이 세상은 하나의 환상이자 유령이라고 간주할 수 있으므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의 꿈일 뿐이고

우리가 잠든 사이 존재한 척했을 뿐인

일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의 모든 시련과 재난에 대한

교묘하고 뿌리깊은 무관심이 생겨난다.

죽은 자들은 길모퉁이를 돌아갔고

그래서 더는 볼 수 없다.

고통받는 자들은 우리 앞을 지나간다.

우리가 만일 느낀다면 악몽같이,

우리가 만일 생각한다면

기분 나쁜 백일몽같이

지나간다.

우리 자신의 고통도

이러한 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왼쪽으로 누워 잠들고,

꿈속에서 짓눌린

심장의 박동 소리를 듣는다.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약간의 햇빛,

약간의 바람,

거리의 윤곽을 이루는

몇 그루의 나무,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

지나간 날들의 상처,

언제나 불확실한 과학과

언제나 감춰져 있는 진실......

그 외에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

아무것도

아니다.....

(불안의 책, P.578)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잔인함과 자비심과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으로 가득한 감독.

(리스본행 야간열차, P.116)


 


 


 

우리 인생은

바람이 만들었다가

다음 바람이 쓸어갈

덧없는 모래알.

완전히 만들어지기도 전에

사라지는 헛된 형상.

(리스본행 야간열차, P.537)
 



 

미래를 전망함의 말미.


정지돈이 머물렀던 헤프 광장 인근의

에어비앤비를 관리하는 이리는 헤프가 고향인 사람으로

젊은 시절 헤프를 떠났다가 지금은 이곳에 정착한 인물로,

그의 아버지가 헤프 시립병원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작가가 이리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정웰링턴을 아시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지돈의 다른 소설 보러가기


 


 






  추천   




   



       

(주)건축사사무소 모도건축
07997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동로 293 현대41타워 3503호 | tel 02 3143 7716 | fax 02 3143 7717

copyright(c) 2004 modo all rights reserved